[콘경BIZ] 익스트림 스포츠 대명사 레드불..."스포츠 문화를 팔다"

기사입력:2018-06-04 10: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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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경제 정선오 기자] “놓치면 100% 후회각! 네이마르 실물 영접할 기회! 신청 마감 임박”

에너지 음료 회사 레드불(RedBull)의 홈페이지는 다른 음료회사와 다르다. 레드불 홈페이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캐치프레이즈는 음료회사가 아니라 마치 축구 구단을 연상케한다. 에너지 음료 회사 레드불이 축구 구단을 연상케 하는 홈페이지를 구성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1987년 디트리히 마테쉬츠(Dietrich Mateschitz)는 오스트리아에서 에너지 음료 회사 레드불을 창업했다. 레드불은 젊은이들이 클럽에서 격정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보드카 폭탄주를 만들 때 사용하면서 입소문을 타고 큰 인기를 얻었다. 출시 첫 해인 1987년에 약 80만유로(약 10억 7,000만 원)에서 1995년에는 매출 1억유로(약 1,250억 1,600만 원)로 매출 규모가 비약적으로 늘었다.

잘 나가던 레드불에게 문제가 생겼다. 카페인과 타우린 성분 함량이 높은 음료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규제가 강화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레드불은 청소년 유해 음료로 분류됐다. 당시 레드불 매출의 68%를 10~18세 청소년들이 점유하고 있었다. 해당 규제로 주요 소비층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단순한 제품 광고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었다. 레드불은 위기에 굴하지 않았다. 문제를 헤쳐나갔다. 그 결과, 2016년 60억 300만유로(약 8조 59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에너지 음료 최강자 자리를 지켰다. 비법은 ‘익스트림 스포츠’이었다.

◇ 레드불의 선택은 익스트림 스포츠 마케팅

코카콜라, 펩시, 게토레이 등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은 올림픽·월드컵 같은 대형스포츠 이벤트에 쏠려있다. 그러나 레드불의 관심사는 대형스포츠가 아니었다.

(출처 = 레드불 유튜브)

2012년 레드불은 오스트리아의 스카이다이버인 펠릭스 바움가르트너에게 6500만달러(690억원)를 투자했다. 여느 글로벌 기업들과는 다른 행보였다. 2007년부터 5년여의 준비를 한 이 프로젝트는 바움가르트너가 39km 상공에서 자유낙하로 초음속을 돌파하는 유래없는 이벤트였다.

레드불은 바움가르트너의 자유낙하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고, 전세계 800만 명이 동시접속으로 그 광경을 봤다. 유튜브 조회수만 4,000만 건에 달했다. 레드불은 이 프로젝트로 무려 400억달러(약 43조 160억원)의 마케팅 효과를 봤다. 마케팅 효과는 매출로 이어졌다. 프로젝트 성공 이후, 2012년 레드불은 4조 9300억 유로(약 6,6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레드불이 후원하고 있는 익스트림스포츠는 스카이다이빙만이 아니다. 그 외에도 포뮬러원(F1), 야구, 농구, 자전거 BMX, 스케이트보드, 카누, 클라이밍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해당 스포츠와 선수들을 후원하고 있다.

레드불은 주 소비층인 20~30대를 타깃으로 스포츠마케팅을 하고 있다. 레드불은 자신의 브랜드 가치인 '한계를 극복하는 도전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선택했다. 레드불의 익스트림 스포츠 마케팅은 개성을 표현하기 좋아하는 젊은층에게 크게 어필됐다. 에너지 음료가 가지고 있는 ‘개성 넘치고 유니크한 제품’이라는 성격이 익스트림 스포츠의 자유·도전·젊음이라는 가치와 맞아 떨어져 더 큰 효과를 봤다.

◇ 레드불의 ‘축구 제국’ 창조

오스트리아의 레드불 잘츠부르크와 독일의 RB 라이프치히는 레드불이 소유주, 스폰서로 있는 축구팀이다. 레드불은 두 팀 외에도 레드불 브라질, 뉴욕 레드불스, 2014년에 문 닫은 레드불 가나까지 총 5개의 축구팀을 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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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dierotenbullen)

레드불이 무려 5개의 축구 구단을 운영했던 이유에는 전략이 숨어 있다. 레드불은 전 세계를 무대로 레드불은 축구 제국을 건설했다.

레드불은 남미와 아프리카, 미국, 유럽 각 대륙에 하나씩 팀을 보유해 각 대륙의 유망주들을 육성했다.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육성한 유망주들 중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레드불 잘츠부르크로 이적시켰다. 이들이 유럽 무대에서 적응하며 어느정도 정상 궤도에 진입하면 RB 라이프치히로 보내 빅리그 선수로 키운다. 이들이 은퇴할 시기가 되면, 뉴욕 레드불스로 보내 황혼기를 보내개 한다. 실제로 티에리 앙리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 뉴욕 레드불스다.

◇ 전통에 도전하는 레드불

레드불의 스포츠 마케팅은 경기장 내 광고, 유니폼 스폰서, 스타급 선수와 인도스먼트 계약을 하는 등의 기존의 프로 스포츠 마케팅과는 다르다. 레드불의 목표는 단순 브랜드 홍보가 아니라 더 큰 곳에 있다. 바로 '전통에 대한 도전'이다.

2005년 레드불은 SV 카지노 잘츠부르크를 인수했다. 그리고 곧 바로 팀 명칭을 ‘FC 레드불 잘츠부르크’로 바꿨다. 팀 창단 시기도 갱신했다. 클럽 홈페이지에는 팀 창단 시기가 1933년이 아닌 2005년을 표기됐다. 클럽의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팀이라는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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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NY REDBULLS)

FC 레드불 잘츠부르크가 클럽 역사에 대한 도전이었다면 뉴욕 레드불스의 창단은 미국 프로 스포츠 문화에 대한 도전이었다.

1년 뒤, 레드불은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뉴저지 메트로 스타스팀을 인수했다. FC 레드불 잘츠부르크 때와 마찬가지로 팀의 이름을 ‘뉴욕 레드불스’로 바꿨다. 후원기업이나 모기업의 이름이 팀 명칭에 들어가는 것이 익숙지 않았던 미국 프로 스포츠계에서는 이 같은 시도를 좋은 시선으로만 보지 않았다. 하지만 레드불은 이를 통해서 레드불이라는 브랜드를 더욱 대중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 분데스리가의 붉은 소, RB 라이프치히 구 동독 지역의 축구 열기를 부활시키다.

독일 정론지 디 차이트는 “그 어떤 사회 분야에서보다 구 동독 지역이 소외된 부분은 다름 아닌 축구”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2014년 월드컵에서 독일 대표팀으로 출전한 구 동독 출신 선수는 토니 크로스가 유일했다.

구 동독 시절 중심도시 중 하나였던 라이프치히는 통독 이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경제적 어려움 뿐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던 라이프치히는 지역 축구 클럽을 후원할 수 있는 기업을 찾기 힘들었다.

거기에 라이프치히는 도시의 생명력을 잃은 듯 소외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레드불은 라이프치히의 텅 빈 구멍을 메꾸 듯 그 속에 녹아들었다.

2006년 레드불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던 FC 작센 라이프치히를 인수했다. FC 작센 라이프치히는 무섭게 성장해 2016~17 시즌에는 1부 리그에 승격했다. 이후 모든 축구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한때 분데스리가 1위를 달렸다. 시즌 말미에는 바이에른 뮌헨에 이어 2위로 한 단계 내려갔다.

축 쳐져있던 라이프치히는 RB 라이프치히 덕에 에너지를 되찾았다. 라이프치히는 제 1회 분데스리가의 우승팀이었던 라이프치히의 클럽의 명예를 되찾았고, RB 라이프치히가 좋은 성적을 내면서 팬들은 축구를 통해 통합되는 모습을 보였다. 거기에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면서 라이프치히에 1,50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레드불을 연상시키는 RB(Rasen Ball, 잔디에서 하는 공놀이)라는 약자 때문에 레드불은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라이프치히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RB 라이프치히의 플레이 스타일은 에너지 음료 회사인 모기업의 이미지와 매우 흡사하다.

에너지 넘치는 압박 축구로 상대방에게 공을 내줬을 때 빠르게 압박을 가하는 이 스타일은 이제 RB 라이프치히의 전매특허가 됐다.

RB 라이프치히처럼 레드불의 마케팅 방식은 무섭게 휘몰아친다. 레드불은 예산의 30% 이상을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할 정도로 제품과 기업 이미지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스포츠가 자리잡고 있다. 스포츠와 마케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쥔 레드불. 스포츠를 통해 사람들을 휘어잡고 있는 음료 회사는 레드불 뿐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정선오 기자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