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1 09:35  |  웹툰·웹콘텐츠

[콘경 인문학] 이미지 과잉시대, 실천적 '바라보기' 필요

[콘텐츠경제 윤은호 기자] 이미지에는 창작자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이미지가 순수하지 않은 이유다. 이미지 자체를 그대로 수용하는 방식에서 다른 방식으로 보는 해석의 힘이 필요하다.

어떻게 볼 것인가

전통적인 미술사나 미술평론에서는 보통 미술작품을 볼 때 작품을 감상하는 이상적인 방식이나 태도가 있다고 가정한다. 마치 어떤 정답과도 같은 감상법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존 버거는 이러한 감상법을 편협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아카데믹하게 보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청한다. 표준적으로 보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이미지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보는 방식은 표준적인 방식(The Way of Seeing)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식(Ways of Seeing)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이미지 논의에서 배제된 계급, 인종, 성차(gender)의 문제, 그리고 작품의 소유나 후원과 연관된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을 새롭게 제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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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이미지를 바라보는 표준화된 방식이 있었다. 존버거는 표준화된 방식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한다. 사진=pixabay
‘누드’에 드러난 남성적 시선

유럽 회화의 누드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여자이다. 누드화에서 주인공은 절대로 그림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그림 앞에 있는 관객이며, 여전히 옷을 걸친 남자로 상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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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주의 시선과 응시는 유럽의 회화 속에서 잘 나타나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사진=pixabay
유럽의 누드 예술형식에서 화가와 관객(소유자)은 보통 남자이며 대상으로 취급받는 인물은 대개 여자다. 불평등한 관계는 문화 전반에 아주 깊이 각인되어 있어 지금까지도 많은 여자들의 의식을 형성한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일을 여자들 스스로도 자신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들도 남자들이 여자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자신들의 여성성을 살펴본다.

오늘날 이러한 시각은 광고, 저널리즘, 텔레비전과 같은 다양한 미디어 속에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여자를 보는 본질적인 방식, 여자들의 이미지가 사용되는 본질적인 용도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묘사된다.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 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좋게 해 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광고 이미지, 백일몽에 저당 잡힌 현재


과거에 소유자가 물건을 소유한 것 같은 생각을 불러일으킨 역할을 했던 ‘유화’의 자리는 현대에 와서 ‘광고’로 대치됐다. 이 두 가지 매체는 모두 고도로 촉각적인 수단이다.

유화와 광고는 실제의 사물을 획득한 느낌을 사람에게 주지만 기능은 다르다. 유화는 흔히 소유주가 자신의 소유물 또는 생활방식을 통해 이미 향유하고 있던 무엇인가를 보여 준다. 자신이 가치 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더욱 확고하게 갖도록 한다.

반면 광고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현재 생활방식이 만족스럽지 못한 느낌을 갖도록 만든다. 광고에서는 만일 당신이 광고하는 물품을 구입한다면 생활이 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얘기한다. 광고는 현재 상태가 아닌 더 나은 미래를 느끼게 한다. 광고는 소비자들의 환상에 얼마나 적절하게 들어맞느냐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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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상품을 소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미지다. 이미지의 숨은 의도를 해석 수 있는 보기 방식이 필요하다. 사진=pixabay
광고는 본질적으로 현실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백일몽에 적용된다. 광고는 계속 미래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현재를 배제한다. 과거 유화가 특정 계층이나 소유자에게 한정되었다면, 현재의 자본주의 문화는 광고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광고 이미지의 사회적 실체다.

보기(seeing)에서 바라보기(looking)로

우리는 이미지가 도처에 널려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무엇인가를 보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무렇지도 않게 주위를 둘러보며 살고 있지만, 우리는 원하는 것만 원하는 방식으로 보는 건지도 모른다. 보기(seeing)는 일상적인 삶에서 우연성을 지닌다. 바라보기(looking)는 목적성과 방향성이 함축된 자발적 행동이다. 이미지가 과잉된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실천으로서 바라보기다.

윤은호 기자 yyh@con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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