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1 11:30  |  엔터테인먼트

[뮤직콘텐츠①] 베토벤과 마이클 잭슨, 음악산업 역사(上)

[콘텐츠경제 손은주 기자] 18세기 이전 유럽에서 음악은 왕족과 귀족의 전유물이었고, 음악가는 귀족에 종속됐다. 고전파로 구분되는 바흐, 헨델, 하이든 역시 귀족의 보호와 후원을 받아 생활했다. 그러던 음악이 상업적 성격을 뛰기 시작한 것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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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상업적 성격을 뛰기 시작한 것은 베토벤부터다. 사진=pixabay
18세기 후반 산업 혁명과 프랑스 혁명으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하며 음악을 소비하는 주체가 확대됐다. 이 시기에는 악보 유통시장 활성화와 피아노 산업 발전에 힘입어 음악 산업이 발전했다. 변화의 수혜를 가장 먼저 입은 음악가는 베토벤이다. 베토벤은 음악가의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데도 기여했다. 음악가들이 귀족에 귀속되지 않고 예술가로 인정받는 계기를 만들었다

1887년 독일 에밀 베를리너가 원반형 축음기를 개발하며, 음악산업은 콘텐츠 산업의 한 분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최초 베스트셀러 음반이 ‘주기도문’이었다. 당시 원반형 축음기 음질은 좋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주기도문 내용을 알고 있어 훌륭한 기계로 인식했다.

세계 최초 음반 녹음은 1902년 4월 11일이었다. 테너 가수 엔리코 카루소는 이탈리아 밀라노 호텔 306호실에서 100파운드를 받고 아리아 10곡을 녹음했다. 이 앨범은 제작사 예상과 달리 1만 5천파운드의 판매고를 올리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축음기 판매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진행된 전자기기(마이크, 증폭 장치 등) 발전은 음반 산업 확대 뿐 아니라 공연 산업대중화에 기여했다. 라디오와 TV가 등장하며 음악산업은 중요한 변화를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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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와 라디오 같은 전자기기의 발명은 음악산업의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사진=pixabay
미국 라디오 방송은 1924년 500여개의 상업 방송국이 설립됐다. 음악산업은 라디오 대중화 덕분에 소비자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1930년대 미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곡으로는 ‘Sing Sing Sing’과 ‘Somewhere over the Rainbow’ 등이 있었다. 베니 굿맨의 스윙 재즈곡 ‘Sing Sing Sing’과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주인공 도로시가 토토에게 불러주었던 ‘Somewhere over the Rainbow’는 지금도 인기를 얻는 음악이다.

1950년대 들어 음악은 기술발전과 새로운 세대의 출현으로 신규 수요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회사들이 ‘카 라디오’를 액서세리로 제공하면서 미국인들은 출퇴근시 음악을 청취했다. 미국 텔레비전 시장 성장도 음악 시장에 우호적으로 작용했다. 1946년에 8천대이던 텔레비전 판매대수는 1960년에 이르러 4,570만대로 증가했다.

1950~1960년대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베이비부머가 등장했고, 미국 경제가 대공황의 침체에서 성장세로 전환된 시기였다. 1950년까지 정체되던 5~19세 미국 인구는 베이비부머 등장과 함께 1960년과 1970년대에 큰 폭으로 증가했다. 주요 음악 소비자인 젊은 층의 소비 시장이 열린 것이다. 경제 여건도 좋았다. 1940년 2천억달러인 국민총생산(GNP)이 1960년에 5천억달러 이상으로 증가해 미국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력한 성장세를 기록했다.

새로운 소비 세대 출현과 경제 성장은 음악산업의 수요를 증가시켰다. 대공황 이후 장기간 억눌렸던 소비 욕구가 분출하기 시작했고, 소비는 젊은 베이비부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사회의 변화는 1950년대 중반 리듬앤블루스(R&B)에 기반을 둔 로큰롤(rock’ n’roll)이라는 음악 장르가 등장했다. 로큰롤은 라디오와 TV를 등에 업고 베이비부머들 취향을 저격하며 미국 음악산업의 성장을 본격화했다. 베이비부머들은 거칠고 자극적인 로큰롤에 열광했다. 음악을 듣는데 그치지 않고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구매했다. 젊은 층 수요가 증가하며 음반 산업도 활기를 뛰었다. 1950년 1억 8,900만 달러이던 미국 레코드 매출은 1959년에 세 배가 넘는 6억 달러로 급증했다.

한편 텔레비전 보급은 국가 간 콘텐츠 접근성을 개선시켰다. 텔레비전은 훤칠한 외모로 현란한 춤을 선보인 엘비스 프레슬리를 단숨에 ‘로큰롤의 제왕’으로 만들었다. 텔레비전의 힘은 영국에서도 나타났다. 비틀즈, 롤링스톤즈, 퀸, 스파이스 걸스는 British Invasion(미국에서 열풍을 일며 인기를 얻는 현상)을 선도했다.

음악은 경기 둔화에도 수요를 창출했다. 소비는 경기 호황 국면에서 증가한다. 하지만 음악은 위로와 치유의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1970년대 경기 불황기에도 수요가 증가할 수 있었다.

1977년 12월 존 트라볼타가 주연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디스코’ 장르가 알려졌다. 당시는 베트남 전쟁 후유증과 스테그플레이션으로 미국 경제가 후퇴하던 시기였다. 영화 개봉 이후 뉴욕에서만 1,000곳 이상의 디스코텍이 개업하며 음악산업은 경제 불황과 상관없었다.

1981년 8월 1일 미국에서 24시간 뮤직비디오를 방송하는 케이블 채널인 MTV가 개국했다. 음악 전문 미디어의 등장은 ‘음악은 듣는 콘텐츠’라는 상식을 깼고, 음악의 글로벌화를 본격화했다. 마이클 잭슨은 MTV를 통해 음악의 시각적 요소를 부각시키며 음악산업의 변화를 가져왔다. 1982년 Thriller 앨범에 수록된 ‘ Beat It’과 ‘Billie Jean’ 등의 뮤직 비디오는 ‘보는 음악’ 시대를 여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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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 청각 중심의 음악에서 시각 중심의 음악으로 변화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사진=Forbes
또 마돈나는 1982년 10월 6일 발매한 싱글 앨범 ‘Everybody’의 뮤직 비디오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마돈나는 1984년 제 1회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공연 중 결혼식용 대형 케이크에서 등장해 유명세를 탔다. 미국 음반산업협회에서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은 대표곡 Like A Virgin은 세계적으로 2천만장 이상 팔렸다.

손은주 기자 syj@con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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