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3 18:05  |  엔터테인먼트

[콘경 인문학]기호가 창조한 게임 인터페이스

[콘텐츠경제 이혜지 기자] 스위스의 언어학자 소쉬르는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기호들의 삶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기호학이라고 정의 했다.

이 짤막한 정의는 소쉬르가 일반 언어학 강의에서 제자들에게 한 말이다. 언어학의 한 분과가 아닌 오히려 언어학을 넘어서는 분과 학문으로 기호학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그의 이론은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기호학과 구조주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소쉬르는 기호(sign)를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의 결합으로 정의했다. 기의는 단어의 정신적 개념이고, 기표는 문자 그 자체다. 우리가 ‘나무’라는 단어를 보고 실제 ‘나무’를 떠올렸다면 여기서 기의는 관념적으로 생성된 ‘나무’이고, 기표는 ‘나무’라는 단어다. 기표와 기의가 결합될 때 비로소 기호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이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기호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유는 기표와 기의를 결합시키는 의미작용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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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은 기호를 연구한다. 기호는 기표와 기의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의미작용은 기표와 기의를 결합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사진=pixabay
의미작용은 기표와 기의를 결합시키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자동차를 보고 교통수단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자동차라는 기표와 사람들이 탑승할 수 있는 자동차라는 기의를 결합하는 의미작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기표가 주어질 때, 연결할 수 있는 기의가 없으면 의미작용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기호로 불리지 않는다.

소쉬르의 기호학은 언어학에서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언어학에 기반해 랑그(langue)와 파롤(parole), 통시성(diachrony)과 공시성(synchrony) 등 언어의 특징을 제시했고, 훗날 기호학의 중요 이론으로 이어진다.

랑그는 우리말로 언어를 뜻한다. 랑그는 일종의 문법, 관습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말할 때 문법에 따른다. 이러한 언어 행위는 반드시 따를 수밖에 없는 규칙이다. 반면 파롤은 개인의 발화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언어 능력을 발휘한다. 랑그가 사회 구성원이 따르는 보편적인 시스템이라면 파롤은 랑그에 의해 실현되는 개인적인 행위다. 소쉬르는 파롤보다 랑그에 우위를 두어 향후 사회의 보편적 구조를 찾는 사조인 구조주의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편 언어는 공시태와 통시태의 특성을 갖고 있다. 언어의 통시성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진화를 뜻한다. 공시성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이 특정 시점에서의 언어체계를 말한다. 현재 탈북한 사람들은 ‘새터민’으로 불린다. 이 단어는 과거 ‘북한 탈북민’으로 불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언어가 달라진 것이다. 언어의 통시성인 것이다.

언어의 공시성은 역사적 흐름은 중요하지 않다. 현시점에서 다른 언어들과 차이점이 중요하다. 사과는 토마토, 딸기, 바나나가 아니기 때문에 사과라는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어의 공시성 때문이다.

언어의 공시성과 통시성은 의미와 연관된다. 하나의 언어가 시기에 따라 변화했다면, 기표는 달라졌지만 기의(의미)는 변화되지 않았다. 또 공시성은 다른 언어들과의 관계를 통해 의미를 획득한다. 공시성과 통시성은 기표보다 기의(의미)가 중요한 것이다. 실제, 기호학은 통시성은 배제하고 공시성에 초점을 맞춘다.

더 나아가 언어는 계열체와 통합체로 구성된다. 계열체는 언어들의 차별성과 기능적 차이를 의미하고, 통합체는 기능적 차이를 갖는 언어 계열체의 결합이다. “나는 학교를 갔다”라는 문장은 ‘나는’, ‘학교’, ‘갔다’ 등 각 단어들이 나열돼 있다. 여기서 각 단어들은 계열체다. ‘나는’이라는 단어 대신 ‘당신’, ‘우리’라는 단어로 대체 가능하다. 또 ‘학교’는 ‘집’, ‘놀이터’로 대체 가능하다. 각 계열체는 유사한 의미를 갖는 범주들로 대체가 가능한 것이다.

반면 통합체는 각 계열체들이 결합된 문장이다. “나는 학교를 갔다”라는 문장은 각 계열체들이 순서적으로 배열된 것이다. 언어들의 배열은 규칙과 관습으로 이루어져 각 계열체들의 상호 의존성이 중요하다.

한편 미국에서 철학자 퍼스는 기호학의 또 다른 시작을 알렸다. 소쉬르의 기호학인 언어학에서 출발했다면 퍼스의 기호학은 논리학에서 자양분을 얻었다. 퍼스에게 논리학은 단지 기호학의 다른 이름일 뿐이며, 기호학은 기호에 대해 필수적인 이론이었다. 퍼스의 기호학은 이후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인 프래그머티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소쉬르가 기호를 기표와 기의로 결합으로 봤다면 퍼스는 기호를 ‘표상체(기표)’, ‘대상체’, ‘해석체(기의)’의 결합으로 봤다. 퍼스와 소쉬르의 차이점은 지시 대상이다. 퍼스는 기호가 지시하는 실제 지시대상으로 대상체를 제시했지만 소쉬르는 지시대상을 배제했다.

대상체는 기호가 지시하는 실제 대상이다. 표상체는 기호체로 불리며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해석체는 정신 속에서 해석되는 내용을 뜻한다. 우리가 비행기라는 단어를 봤을 때 이 단어는 표상체다. 표상체가 지시하는 실제 대상인 비행기는 대상체가 된다. 하늘을 비행하며 사람들을 수송하는 비행물체라는 해석이 해석체다.

퍼스는 표상체와 대상체의 관계 속에서 기호를 도상, 지표, 상징을 구분했다. 도상은 지시대상과 유사성을 갖는 기호다. 사물의 형태를 유사하게 재현하는 그림이나 사진, 개나 고양이의 소리를 흉내낸 의성어가 이에 해당한다.

지표는 대상과 사실적이고 인과적인 관계로 연결돼 그 대상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기호다. 지표는 인접성과 인과 관계를 중요한 특성으로 갖고 있다. 해변에 찍힌 발자국은 사람이 지나갔다는 지표고, 산에서 나는 연기는 불이 났다는 지표다.

상징은 임의로 만들어진 관념이나 기호로, 기호와 대상체 사이에 유사성이나 연관성 없이 약속에 의해 만들어진 기호다. 대표적으로 언어가 상징 기호다. 삼성전자의 로고도 상징기호다. 우리는 삼성 로고를 보고 삼성전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삼성로고와 삼성전자는 사실상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단지 사회적으로 약속한 로고다.

소쉬르와 퍼스의 기호학은 콘텐츠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게임은 기호학의 이론들로 게임 인터페이스를 창조하고 있다. 게임 속 가상의 세계는 수많은 기호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게임은 계열체, 통합체, 도상, 상징, 지표 등 기호학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는 배틀 그라운드는 기호들의 세계다. 이 게임은 차별성을 지닌 수많은 계열체들로 구성돼 있다.

무기, 이동 수단(오토바이, 자동차), 의상, 악세사리 등 다양한 아이템들의 계열체들이 있다. 이 아이템들은 사용자에 의해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다. 통합체는 계열체를 연쇄적으로 조합해 나타난 베틀 그라운드 인터페이스다. 수많은 계열체를 게임에 배치해 사용자들은 다양한 조합으로 적과 경쟁할 수 있다. 또 도상, 지표, 상징 기호는 사용자들이 베틀 그라운드에 몰입할 수 있는 게임 환경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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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은 기호를 연구한다. 기호는 기표와 기의의 결합으로 구성된다. 의미작용은 기표와 기의를 결합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사진=pixabay

캐릭터의 군복, 배경, 총, 자동차, 전쟁터 등의 실제와 유사한 도상기호를 활용해 사용자는 가상 세계에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사용자는 도상기호를 통해 구체저인 사물을 떠올릴 수 있다. 지표기호는 총알 수, 생명 게이지, 총소리, 자세, 방향, 네비게이션 등이 가리키는 구체적 사실을 통해 게임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상징 기호는 생명력을 표시하는 게이지, 상태를 표시한 아이콘으로 구성돼 사용자의 게임 진행에 효과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이혜지 기자 lhj@conbiz.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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